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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축구

아빠의 후회와 다시 시작하는 아들의 축구

by 상암의 왕 2017. 11. 12.


7살 아이가 축구를 시작한 게 벌써 2년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아빠의 욕심과 바람대로 아이는 돌잡이 때도 축구공을 만졌고

아기 때부터 아빠와 함께 전국의 축구장을 다녔다.


처음 집 근처의 FC서울 축구교실을 데려갔을 때도 어색해 하지 않고 바로 어울리고

또래의 아이들보다 보고 듣고 경험한 게 많아서인지 제법 잘 차는 축에 들었다.


아이는 분명히 축구를 즐기고 있었고 행복해 했다.

아이의 실력이 아빠의 실력인 듯 아빠도 뿌듯하고 행복했다.


그리고 6살 그 해, FC서울 구단에서 주최하는 FOS 컵 예선 대회에서 우승/준우승으로

만난 아이들이 연합해서 사설 축구대회에 나가 전승 우승하면서부터 일이 시작됐다.


아이의 부모님들이 친해져서 따로 팀을 꾸리길 원했고 마침 기존 축구교실에서 혼자서

날아다니던 아들 때문에 내심 미안했던 터라 코치님의 추천을 받아 상암월드컵

풋살구장에 만들어진 취미반보다 더 실력 좋은 심화반 팀에 들어가게 됐다.


듣던 대로 아이들의 평균 실력은 매우 높았고 본래 예민한 성향의 아들은

못난 아빠의 눈에 보이길 소극적이고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 아이가 저렇게 못하는 아이가 아닌데...'

'왜 실력을 못 보여 주는 걸까... 좀 더 뛰면 되는데...'


 그 때부터였나 보다. 아빠의 욕심이 시작된 것은.


 다그치고 뛰라고 외치고... 가슴아프게도 다그치다가 아이를 울린 적도 있었다.


 동네의 축구교실에 따로 등록해서 주 2회 축구를 시키기 시작했고

 주말에는 풋살구장 축구교실과 학부모님들과 각종 사설대회를 쫒아다녔다.


 대회가 없는 날에는 동네 근처의 축구교실에 참관수업을 다니며 아이의 실력을 점검해보고

 집앞 축구장에서 따로 훈련도 시켰다.


 결국 여름이 오면서 탈이 났다. 아이가 쓰러졌다.


 입원했다가 퇴원한 아이를 아빠는 또 대회에 데리고 나갔고

 몇일 후 아이는 또 쓰러졌다.


 다른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여름 방학때 지방에서 열리는 큰 대회를 어찌 갈 지 어디서 묵고

 어떤 밥을 먹일 지 계획을 짜고 있을 때, 못난 아빠는 아이가 쓰러진게 아쉬워, 같이 대회에

 못 나가게 된 게 아쉬워서 말도 못 꺼내고 전전긍긍했다.


 아이는 어느새 소극적이고 기계적인 축구를 하고 있었다. 몸싸움을 멀리하고 공을 받아도

 치고 나가기 보다는 패스를 주고 전방에서 공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패턴의 연속....

 아빠도 축구팀에서 아이의 위치처럼 학부모들 사이에서 소극적인 위치로 변해가고 있었다.

 아이는 아내에게 축구를 그만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다고 햇다.


 요컨대 결단이 필요한 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FC서울 구단의 축구교실 정책과 코치님의 성향 때문인지 불만을 느낀 부모님들이

 하나 둘 아이들을 데리고 떠났고 몇 친한 부모님들께 내 아이도 같이 떠나자는 말까지 들었지만

 차마 떠나지 못했다. 또 어떤 부모님들은 같이 가자는 말조차도 건네지 않았다. 아마도 내 아이의

 실력이 마땅치 않거나 아이가 쓰러진 여름이후로 여러가지 행사 참가에 소극적으로 변한 나에

 대한 불만도 있었으리라.


 이렇게 남겨진 듯한 느낌으로 이제 아이의 축구를 그만 시켜야 하나 고민하다가 출장 때문에

 처음으로 주말 축구교실을 아이와 아이 엄마만 보내게 되었다. 그만 보내야 할까... 하는 각오로

 축구교실에서의 아이가 어땠는지 물어보았더니 아내의 말이 너무나 뜻밖이었다.


 너무나 잘 뛰더란다. 흡사 예전에 축구교실 옮겨오기 전의 모습처럼 웃으며 공격도 수비도

 능동적으로 잘 하더란다.


 다음 주말에 내 눈으로 확인한 아이는 그 동안 보아 온 모습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공격과 수비도 자기가 주도하고 때로는 패스도 내어주고... 예전의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모습은 온데 간데 없었다. 볼이 빨갛게 상기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는 오늘 축구가

 너무 재밌었노라고 말했다.


 무엇이 바뀐 걸까... 단순히 잘 하는 아이들이 떠나가서?

 아니다. 비교를 당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스트레스가 없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 못난 아빠가 다그치고 소리치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에 평화가 온 것이다.


 이제야 깨달았다.


 애초에 아이에게 축구를 시킨 이유가 축구라는 운동을 통해 자기 신체에 대한 자신감을 얻고

 협동심과 체력을 길러주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나.


 남보다 잘 하려고 하는 축구가 아니라 즐겁게 하는 축구가 되어야 하는 거였다.


 1년 동안 헛된 욕심에 아이의 소중한 즐거움을 빼앗은 것 같아 너무나 미안했다.

 

 이제 아이에게 축구를 잘 하라고 다그치지 않으려고 한다. 그저 하루 하루 즐거운 축구를

 시키고자 한다. 축구에 대한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아이의 축구는 다시 시작이다.


 아빠의 축구도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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