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써 경험해 본 시골(여기서 시골은 읍단위 이하의 지역)사람들의 생활방식과 문화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워낙 지역기반의 공동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 일단 외부인에 대한 배타적 잣대도 물론 한몫을 하겠지만 일면 확 드러나는 문화적, 관습적 차이점도 상당수 있다.
첫째, 시골사람들이 공동체주의가 워낙 투철하다보니 니것 내것의 소유개념의 범위가 불분명하다. 이러한 소유개념은 단순히 물질적 요소에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사생활과 같은 정신적 측면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데 일례로 공용도로나 타인소유의 토지에 대한 침해(좋게 보면 땅을 놀리면 안된다는 선의의 강박관념)도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 그들의 공동체기반 정신에 입각하면 집에 있을 때, 문을 잠그고 있는 것은 해서는 안되는 일이기도 하다.(매우 불쾌해 하는 경우도 많다.)
둘째, 합리적이기 보다는 감성적인 경우가 많다. 지역 공동체 사회에선 누가 어디 살고 누구의 친구가 누구 동창, 누구와 누가 친척, 친구의 형이 어디 공무원, 아무개 집의 둘째 아들이 누구의 누구 뭐 이런 식으로 거의 모두가 얽혀있다. 도시에선 인구밀도도 높고 누가 누군지 모르고 하루에도 수천명씩 지나치고 살지만 시골로 들어가면 어떻게 해서든지 얽히게 때문에 논리적인 해결보다는 감성적인 해결이 많아진다. 논리적으로 해결 못하는 분쟁이 아는 사람을 통하고 얽히면 의외로 쉽게 풀어지는 경우도 심할 정도로 많다.
셋째, 공동체주의에 기반한 관용이 보편화 되어 있다. 어차피 지역사회에서 얽혀 살기 때문에 시간관념이나 약속의 개념의 폭이 넓은 것 같다. 도시에선 언제까지란 기한이 정해지면 모월 모일, 심하면 몇시까지란 개념이 대충 성립하지만, 시골에서는 확실한 기한이란 없다. 다음주 까지라면 다음주 월요일, 화요일... 이런 개념보다는 언제인지 모르지만 그냥 다음주이다. 일례로 택배같은 경우, 약속된 날짜에서 하루이틀에서 심지어는 일주일 차이도 묵인되는 분위기가 많다. 급하다고 재촉하면 "그리 급하면 일주일 전에 시키지 그랬냐"는 대답이 나오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경우가 많다. 시골에서는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행위도 타지인의 입장에서는 소비자 우위이기 보다는 판매자의 우위인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넷째, 지역공동체사회의 진입장벽이 높다. 즉, 텃세가 심하다는 이야기인데 어느 사회나 새로운 이방인에 대한 텃세는 존재하므로 딱히 시골사람들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단지, 타지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시골사람들의 텃세가 막연한 자존심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시골에서만큼은 자기들이 제일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방인을 대할 때, 진주를 품은 조개처럼 삭히지 않고 공글린다. 타지인들은 시골사람들에게 무언가 사과의 말을 듣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내 생각에는 "그렇게 잘난 놈이 왜 여기에 와 있냐"는 자존심이 묵묵부답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 같다.
다섯째, 근원적으로 좀 더 물질적이다. 일견 도시사람들이 더 배금주의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숭상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근원적으로 시골사람들은 논리적인 이야기보다는 직접적이고 물질적인 것, 즉,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다. 무언가 설득하고자 논리적인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묵묵부답으로 있다가 자기들끼리 "박사 하나 왔네" 비꼰다. 사실 시골이라는 환경이 그럴 수 밖에 없기 때문이긴 하지만 시골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형이상학적 주제나 고차원적 주제보다는 탁배기 한잔 놓고 다소 형이하학적 주제의 대화나 윷놀이, 화투 치는 것이 더 빠르고 편리한 것 같다.
시골사람들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써 놓았지만 사람에 따라 실제 느껴지는 괴리는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때 뭍지 않고 순수하다는 이야기는 뒤집어 놓고 보면 단순하고 감성적이란 뜻이다. 우리는 같은 시공간을 살고 있지만 생각의 차원은 다르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들은 나를 "불쌍한 도시사람"으로 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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